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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기술 독립은 최신을 좇는 것이 아니다 — AI 치킨게임을 넘어 생태계를 만들자카테고리 없음 2025. 7. 6. 09:18

진정한 기술 독립은 최신을 좇는 것이 아니다 — AI 치킨게임을 넘어 생태계를 만들자
이강훈 (사단법인 한국인공지능연구소 소장)
지금의 글로벌 AI 경쟁을 보면, 그 본질이 무엇인지 곱씹게 된다. 언어모델 분야에서는 이미 무한 경쟁의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모델의 파라미터 크기와 데이터셋의 양, GPU의 속도와 대역폭을 조금이라도 더 키우기 위해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이 경쟁은 점점 더 비효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알고리즘은 계속 공개되고 있고, 데이터도 대부분 공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GPU 기술 역시 해마다 가격 대비 성능이 향상되며, 누구나 일정한 투자만 하면 금세 도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다. 과거처럼 ‘돈이 많으니 최신’이라는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치킨게임에 뒤늦게 뛰어들 이유가 있는가
이런 치킨게임 속에서 대한민국이 똑같은 방식으로 따라가야 할까? 매번 더 큰 모델을 만들겠다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구글과 오픈AI가 내놓은 기술의 잔상만을 좇아 ‘최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이제는 더 실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치킨게임이 한창일 때 가장 현명한 전략은, 그들이 벌여놓은 게임의 결과를 싸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생태계를 차근차근 구축하는 것이다.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으로 참여해야 한다.
‘소버린 AI’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우리는 ‘소버린 AI’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국가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AI를 주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그 의미가 자칫 오해되고 있다. 마치 최신 모델을 가장 빨리 구현하거나, 가장 큰 GPU 클러스터를 도입하는 것이 ‘독립’의 증거인 듯 이야기된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글로벌 빅테크가 공개하는 기술은 진정한 ‘최신’이 아니다. 이미 다음 세대의 기술을 준비한 상태에서, 상업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기술만을 시장에 풀어낸다. 우리는 그 잔상을 보며 놀라고, 거기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다. 결국 그들의 마케팅에 속아, 그들의 게임판 위에서 뛰는 꼴이다.
진정한 기술 독립은 생태계에서 나온다
진짜 독립은 최신을 좇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실험하고 실패하며 새로운 기술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힘은 사람과 환경에서 온다.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체계, 작은 시도들이 존중받고 실패해도 괜찮은 연구 문화, 학계와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 GPU 몇 장과 클라우드 계정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힘이다.
기술 독립의 본질은 최신의 기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최신을 만들 수 있는 토양을 갖추는 것이다. 최신을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최신을 만드는 나라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짜 독립이다.
중국을 보며 배우자
최근 중국은 AI와 로봇 분야에서 놀라울 만큼 빠르게 앞서나가고 있다. 언어모델의 성능에서 GPT-4와 경쟁하는 모델들을 공개하고, 로봇 분야에서도 인간형 로봇의 상용화를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이 단순히 최신 기술을 ‘베끼는’ 나라라면 이렇게 빠르게 도약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막대한 투자를 통해 자국의 인재를 키우고, AI 교육을 강화하고, 실패를 허락하며 생태계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토양 위에서 최신 기술을 빨리 흡수하고, 자신들만의 응용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
우리는 더 이상 최신 기술의 잔상을 바라보며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마케팅에 속아 그들의 게임판에서 똑같이 자본을 낭비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벌여놓은 치킨게임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교육과 연구가 자유롭게 이뤄지고, 산업과 학계가 협력하며,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기술 독립을 이루는 길이며, AI 시대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는 길이다. 최신을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최신을 만들어내는 나라로 가야 한다.
2025년 7월 6일
이강훈
(사단법인 한국인공지능연구소 소장)